파죽지세로 오르던 뉴욕 증시가 '인공지능(AI) 수익성'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실제 이익을 거두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면서 나스닥 지수가 2% 이상 급락하는 등 대규모 조정 국면에 진입했다.
13일(현지시간) 월가는 단순한 기대감을 넘어 '숫자'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이에 부응하지 못한 기업들의 주가는 가차 없이 곤두박질쳤다.
시스코·앱로빈의 배신... 실적으로 증명 못한 'AI 효과'
이번 하락장의 기폭제는 네트워크 장비의 거인 시스코(Cisco)와 모바일 광고 플랫폼 앱로빈(AppLovin)의 실적 충격이었다. 두 기업 모두 AI 인프라와 소프트웨어 생태계의 핵심 플레이어로 꼽혔으나, 시장의 눈높이를 충족시키는 가이던스를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투자자들은 AI 도입이 기업의 매출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 기대했으나, 실제 성적표는 "비용은 늘고 성장은 정체된" 모습을 보였다. 이는 "AI가 세상을 바꿀 기술임은 분명하지만, 당장 기업의 지갑을 불려주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을 시장에 심어주었다. AI가 만능 열쇠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그동안 미래 가치만을 보고 달려들었던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은 것이다.
비싸진 메모리, 얇아진 마진... 하드웨어 비용의 역습
기술적 관점에서 빅테크 기업들을 가장 괴롭히는 요소는 '하드웨어 비용의 증가'다. AI 모델을 구동하기 위해서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같은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가 필수적인데, 최근 이 부품들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하드웨어 기업들의 마진(이익률)을 갉아먹고 있다.
서버를 구축하는 비용(CAPEX)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이를 통해 벌어들이는 서비스 수익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 업체나 AI 솔루션 기업 입장에서는 원가는 오르는데 판매가를 그만큼 올리지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이는 결국 "AI 인프라 투자가 과잉 중복 투자가 아니냐"는 'AI 버블론'을 재점화시키는 근거가 되고 있다.
'묻지마 투자' 끝났다... 이제는 '숫자'로 증명해야 할 때
전문가들은 이번 조정이 건전한 시장으로 가기 위한 '옥석 가리기' 과정이라고 진단한다. 과거 닷컴 버블 당시 인터넷 기업이라면 무조건 주가가 올랐던 시기가 끝났듯, AI 테마 역시 이제는 실질적인 투자 대비 수익(ROI)을 증명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월가의 한 전략가는 "투자자들은 이제 '우리가 AI를 도입했다'는 뉴스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며 "구체적으로 비용을 얼마나 절감했는지, 혹은 AI로 인해 신규 매출이 얼마나 발생했는지를 재무제표에 찍어내야 주가를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묻지마 투자의 시대가 저물고, 철저한 실적 검증의 시간이 도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