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우주 진출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얼마나 무거운 것을, 얼마나 싸게 궤도에 올려놓느냐가 경쟁의 핵심인 ‘발사 중심’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이미 올라간 위성을 관리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운용 중심’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른바 궤도 서비싱(On-Orbit Servicing, OOS)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우주 공간에서 위성에 연료를 재주입하거나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하고, 심지어 궤도를 수정해 주는 우주 출장 수리 서비스다.
하지만 이 꿈같은 기술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지상의 기술과는 차원이 다른 극한의 하드웨어 스펙이 요구된다. 바로 스스로 판단하는 인공지능(AI) 두뇌와 이를 한치의 오차 없이 실행할 정밀한 근육이다.
우선 궤도 서비싱을 수행하는 위성은 지상의 관제 센터 명령 없이도 스스로 타깃 위성을 식별하고 도킹 경로를 계산해야 한다. 찰나의 통신 지연이 충돌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컴퓨터 비전이나 강화학습 같은 고도화된 AI 모델이 탑재되는데, 문제는 우주라는 환경이 반도체에게는 지옥과도 같다는 점이다.
지상에서 쓰이는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그대로 우주로 가져갔다가는 강력한 우주 방사선과 급격한 온도 변화, 진공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고철 덩어리가 되기 십상이다. 특히 고에너지 입자가 반도체 회로를 통과하며 데이터를 0에서 1로 강제로 바꿔버리는 ‘단일사건효과(SEE)’는 AI의 의사결정에 치명적인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우주 산업에서는 성능은 낮지만 검증된 구형 칩인 ‘RAD750’이나 ‘LEON3FT’ 같은 방사선 경화(Rad-Hard) 프로세서를 주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이들은 지상 칩 대비 연산 속도가 10년 이상 뒤처져 있어, 최신 AI 알고리즘을 실시간으로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따라 최근 업계에서는 하드웨어 구조 자체를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는 FPGA(프로그래머블 반도체) 기반의 AI 가속기나, 소프트웨어적으로 오류를 보정하는 엣지 AI 아키텍처 연구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단순히 빠른 칩이 아니라, 방사선 피폭 상황에서도 AI 연산 결과를 ‘예측 가능하게’ 유지하는 신뢰성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AI가 뇌라면, 이를 물리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모터와 구동계다. 우주 공간에서의 수리 작업은 수 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초정밀 작업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우주용 BLDC(Brushless DC) 모터다. 일반 모터와 달리 마찰을 일으키는 브러시가 없어 진공 상태에서도 스파크나 마모 없이 장시간 구동이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로봇 팔이 물체를 잡을 때 느껴지는 힘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힘 조절을 하는 ‘토크 피드백’ 기술이 필수적이다. 이는 AI의 판단과 모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동기화하여, 로봇 팔이 위성을 너무 세게 움켜쥐어 파손시키거나 놓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
결국 이 모든 기술의 완성은 ‘헤리티지(Heritage)’로 귀결된다. 우주 산업에서 헤리티지란 단순히 오래된 역사가 아닌,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았다는 ‘생존 데이터’를 의미한다.
아무리 지상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인 AI 모델이나 모터라 하더라도, 실제 궤도 환경에서 검증되지 않았다면 무용지물이다. 한국의 반도체 및 제조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를 우주급 신뢰성(Space-Qualified Reliability)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큐브위성 등을 통한 끊임없는 궤도 실증과 데이터 축적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주는 오직 검증된 기술에게만 문을 열어준다.
다가오는 자율 우주 시대, 우리의 하드웨어가 우주라는 거대한 테스트베드에서 살아남아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