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컴퓨터로 불리는 '양자 컴퓨터(Quantum Computer)' 상용화를 위한 전 세계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대한민국의 앞선 반도체 패키징 기술이 양자 패권 경쟁의 핵심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양자 칩(QPU) 자체의 성능을 높이는 것을 넘어, 이를 시스템화하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패키징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상용화는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마이크로전자및패키징학회(KMEPS)는 지난 6일 서울 과학기술컨벤션센터에서 '반도체 패키징 기술의 AI, 양자 첨단 인프라 적용 기술포럼'을 개최하고, 반도체 후공정 기술을 양자 생태계에 접목하는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양자 칩, 만드는 것보다 '잘 포장하는 것'이 핵심 기술
이날 포럼의 화두는 단연 '패키징'이었다. 일반인들에게 패키징은 단순히 칩을 감싸는 포장 정도로 인식되기 쉽지만, 반도체 공학에서 패키징은 칩과 메인보드를 전기적으로 연결하고 열과 충격으로부터 칩을 보호하는 고도의 기술 집약 분야다. 특히 양자 컴퓨터에서는 그 중요성이 배가된다.
이용호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초전도 양자컴퓨팅 시스템연구단장은 "양자 컴퓨팅 상용화를 위해서는 양자 프로세싱 유닛(QPU) 자체의 성능 향상도 필수적이지만, 이를 둘러싼 패키징의 최적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자 컴퓨터의 핵심인 '큐비트(Qubit)'는 0과 1을 동시에 처리하는 중첩과 얽힘이라는 양자역학적 특성을 가진다. 이 큐비트는 외부의 미세한 노이즈나 열에도 상태가 깨지기 쉬운 매우 예민한 존재다.
따라서 극저온(영하 273도 수준) 환경을 유지하고 신호를 손실 없이 전달하는 패키징 기술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칩을 만들어도 무용지물이 된다. 전문가들이 기존 반도체에서 쓰이던 '플립칩(Flip-chip)' 등의 첨단 공정이 양자 분야로 넘어와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K-반도체 패키징 노하우, 극저온 양자 생태계의 '치트키' 된다
포럼을 기획한 이은호 성균관대 교수(KMEPS 양자연구회 위원장)는 "초전도 소자, 이온트랩, 중성원자 등 다양한 양자 플랫폼에서 이미 우리가 보유한 패키징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패키징 기술력을 축적해 왔다.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3D 적층 기술이나 미세 공정 노하우는 양자 칩의 집적도를 높이는 데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이 단장은 "QPU 개발을 위한 패키징 생태계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이 기술력을 양자 분야로 확장한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이날 포럼에서는 극저온 초전도 환경에서 버틸 수 있는 신소재 활용법과 공정 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었다. 성균관대, 충북대, 숭실대, KIST 등 산·학·연 전문가들은 양자 칩과 외부 제어 장치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Interface) 기술이 향후 양자 컴퓨터의 성능을 가르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35년 양자 강국 도약... 산·학·연 "지금이 골든타임"
정부 역시 이러한 기술적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심주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양자혁신기술개발과장은 "정부는 2035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양자 강국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이번 포럼이 양자 기술과 패키징 기술의 융합을 통해 한국이 기술 선도국으로 나아가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주영창 KMEPS 회장 또한 "양자가 단순한 실험실 기술을 넘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패키징 기술이 필수적"이라며 "학회 차원의 연구가 국가 정책으로 이어져 기술 패권 확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업계는 양자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2035년을 기점으로 신약 개발, 금융 모델링, 암호 해독 등 산업 전반에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코리아'의 DNA가 '양자 코리아'로 진화할 수 있을지, 그 해답은 바로 패키징 기술에 달려 있다.

